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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량을 줄인 기억도 없고, 강도를 낮춘 것도 아니다. 계획도 크게 바뀌지 않았고, 빠뜨린 훈련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 훈련이 버겁다. 페이스는 유지되는데 숨이 차고, 사이클에서 같은 파워가 무겁게 느껴지고, 수영에서는 세트 후반에 집중이 흐트러진다.
이럴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보통 이렇다.
"내가 어디서 훈련을 빼먹었나?"
"체력이 떨어진 건가?"
"이럴 때는 다시 밀어붙여야 하나?"
하지만 많은 경우, 이 상태는 체력이 줄어서가 아니라 '쌓이던 흐름이 잠시 멈춘 상태'에 가깝다.
철인3종 훈련을 이어가다 보면 이런 순간을 반드시 마주하게 된다. 훈련 일지를 펼쳐봐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계획대로 소화했고, 빠진 세션도 없다. 그런데 몸은 분명히 말한다. "요즘 힘들다"고. 이 미묘한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불필요한 조정으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 쉽다. 이 글은 그 상태를 어떻게 읽어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체력은 줄지 않았는데, 체감만 나빠질 수 있다
철인3종 훈련에서 체력은 하루 이틀 사이에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훈련을 꾸준히 이어오던 상태라면 더 그렇다.
체력은 쌓는 데 몇 주가 걸리고, 잃는 데도 마찬가지로 시간이 필요하다. 이틀 쉬었다고 체력이 사라지지 않고, 일주일 강도를 낮췄다고 즉시 퇴보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체력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훈련은 유지되었지만 회복의 질이 조금씩 흐려졌고, 피로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 다음 훈련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때 몸은 체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체력을 꺼내 쓰기 어려운 상태에 가깝다. 마치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상태에서 일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능력 자체는 남아 있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체력을 더 쌓아야 한다는 판단으로 강도를 올리거나, 반대로 체력이 떨어졌다는 판단으로 과도하게 휴식을 취하게 된다. 두 선택 모두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다.
실전에서 자주 나타나는 신호들
체력이 실제로 줄어들기 전, 이런 신호들이 먼저 나타난다.
워밍업이 끝나도 몸이 덜 풀린 느낌이 남는다. 예전에는 워밍업만 마치면 몸이 준비된 느낌이 들었는데, 요즘은 10분, 15분을 해도 어딘가 굳어있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본 훈련에 들어가도 한참 뒤에야 페이스가 올라온다.
훈련 초반이 유난히 버겁고, 중반 이후에야 적응된다. 처음 5km는 언제나 힘들지만, 최근에는 그 힘듦이 유독 길게 느껴진다. 페이스가 올라가기까지의 시간도 더 오래 걸린다. 예전에는 2km 정도면 리듬을 찾았는데, 요즘은 3km, 4km를 지나야 겨우 안정된다.
같은 훈련인데 "오늘은 왜 이렇게 길지?"라는 생각이 든다. 거리도 시간도 똑같은 훈련인데, 끝나는 시점이 평소보다 훨씬 멀게 느껴진다. 체감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10km 러닝이 15km처럼 느껴지고, 1시간 사이클이 90분처럼 느껴진다.
기록을 확인하는 횟수가 다시 늘어난다. 예전에는 흐름에 집중했는데, 최근에는 시계를 자주 확인하게 된다. "지금 어디쯤인가", "얼마나 남았나"를 반복적으로 체크하며 훈련을 진행한다. 이는 훈련에 대한 집중력이 흐트러졌다는 신호다.
훈련 후 피로도는 비슷한데, 회복되는 느낌이 약하다. 훈련을 마치고 나면 예전만큼 힘들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났을 때의 느낌이 예전과 다르다. 확실히 회복된 느낌보다는 "그럭저럭 할 만하다"는 느낌에 가깝다.
이 단계에서는 훈련을 망쳤다는 느낌보다는 훈련이 예전보다 까다로워졌다는 인상이 강하다. 중요한 점은, 이 신호들이 체력 저하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라는 사실이다. 체력이 먼저 떨어져서 이런 신호가 나타나는 게 아니라, 흐름이 흐트러지면서 이런 신호가 먼저 나타나고, 이를 방치하면 실제 체력 저하로 이어진다.
이때 가장 흔한 오해
이 시기에 가장 흔한 판단은 이것이다.
"요즘 훈련이 힘드니까, 체력이 떨어진 게 분명하다."
이 판단 자체는 자연스럽다. 실제로 훈련이 힘들게 느껴지니까. 문제는 이 판단에서 나오는 선택이다.
그래서 나오는 선택은 보통 두 가지다.
강도를 다시 올려서 자극을 주려고 한다. "요즘 너무 쉬운 것 같으니까, 강도를 더 높여야겠다"는 판단으로 인터벌을 추가하거나 세트를 늘린다. "체력이 떨어졌으니 더 밀어붙여야 한다"는 논리다.
훈련을 더 빼면서 컨디션을 기다린다. "몸이 안 좋은 것 같으니까 이번 주는 쉬어야겠다"며 계획된 훈련을 건너뛴다. "체력이 떨어졌으니 회복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 두 선택 모두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다.
강도를 올리면 일시적으로 긴장감이 생겨서 훈련이 나아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인 '흐름의 단절'은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피로를 더 누적시킬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훈련을 과도하게 빼면 일시적으로 몸이 가벼워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흐름을 되찾는 것과는 다르다. 쉬고 나서 다시 훈련을 시작하면 또다시 "처음 적응하는 느낌"이 반복된다.
이 상태의 핵심은 훈련량도, 강도도 아니라 '훈련 간 연결'이다.
훈련이 '연결'되지 않을 때 생기는 현상
체력이 잘 쌓일 때는 훈련이 이렇게 이어진다.
오늘 훈련 → 회복 → 다음 훈련
각 단계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오늘 훈련이 끝나면 몸이 회복 과정에 들어가고, 그 회복이 완료된 상태에서 다음 훈련이 시작된다. 이때 다음 훈련은 이전 훈련의 연장선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적응이 빠르다.
하지만 지금 상태는 이렇다.
오늘 훈련 → 애매한 회복 → 다음 훈련
훈련 하나하나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훈련과 훈련 사이가 매끄럽지 않다. 회복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거나, 회복은 됐는데 그 상태가 다음 훈련까지 유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몸은 매번 "다시 적응해야 하는 상태"에서 훈련을 시작한다. 매번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훈련 자체는 유지되는데 체감 난이도만 올라간다. 기록상으로는 같은 훈련인데, 몸이 느끼는 부담은 점점 커진다.
이 상태를 방치하면 실제로 체력이 저하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흐름의 문제였는데, 이것이 누적되면서 진짜 체력 문제로 전환되는 것이다.
체력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 해야 할 일
이럴 때 필요한 건 새로운 자극이 아니다. 흐름을 다시 이어 붙이는 작업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음 세 가지다.
1. 가장 부담 없는 훈련 하루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다"는 훈련을 찾는다. 거리, 시간, 강도 중 가장 편한 지점을 기준으로 삼는다.
예를 들어 러닝이라면 5km를 여유롭게 뛸 수 있는 페이스, 사이클이라면 1시간을 부담 없이 돌 수 있는 파워, 수영이라면 1000m를 편안하게 소화할 수 있는 강도다.
이 기준은 "내가 가장 잘했던 훈련"이 아니라 "오늘 당장 아무런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훈련"이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실수한다. "예전에 이 정도는 쉽게 했으니까"라는 기준으로 훈련을 설정한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훈련은 그보다 한두 단계 낮을 수 있다.
이 시점에서는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 3개월 전에 했던 훈련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훈련을 선택해야 한다.
2. 그 훈련을 3~5회 연속으로 반복한다
변화를 주지 않는다. 거리를 늘리지 않고, 강도를 올리지 않는다. 매일 똑같은 훈련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이렇게 해서 발전이 있을까?"라는 의심을 견디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발전의 시기가 아니라 흐름을 되찾는 시기다.
기록을 확인하지 않는다. 시계를 보는 횟수를 최소화하고, 기록을 저장만 할 뿐 분석하지 않는다. 오늘이 어제보다 빨랐는지, 느렸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목표는 향상이 아니라 훈련 감각 회복이다. "잘했다", "못했다"의 판단을 멈추고, 단지 훈련을 이어가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훈련의 질이 아니라 흐름의 연속성이다. 훈련과 훈련 사이의 단절을 없애고, 매끄럽게 이어지는 느낌을 되찾는 것이 목표다.
처음 하루 이틀은 여전히 버겁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3일째, 4일째가 되면 몸이 점점 기억해낸다. "아, 이 정도구나"라는 느낌이 돌아온다.
3. '끝나고 나서의 느낌'을 기준으로 삼는다
훈련 중에 힘들었는지보다 다음 날이 자연스러운지가 더 중요하다.
훈련을 마친 후 "오늘 훈련 잘했다"가 아니라 "내일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면 충분하다.
이 기준으로 훈련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훈련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완성도가 아니라 내일과의 연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만약 훈련을 마치고 "내일은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훈련은 지금 단계에서 적절하지 않다. 강도를 한 단계 더 낮춰야 한다. 반대로 훈련을 마치고 "내일도 이 정도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이 지금 당신에게 맞는 훈련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체력이 떨어진 것 같다"는 느낌은 대부분 사라진다. 실제로 체력이 갑자기 늘어나서가 아니라, 체력을 꺼내 쓰는 통로가 다시 열렸기 때문이다.
체력 저하와 흐름 정체의 차이
정리하면 이렇다.
체력 저하: 같은 훈련을 반복해도 회복이 계속 늦어진다. 훈련량을 줄여도 피로가 누적된다. 기록이 실제로 낮아진다. 휴식을 취해도 컨디션이 돌아오지 않는다.
흐름 정체: 훈련은 가능한데 매번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워밍업이 길어지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기록은 유지되지만 체감 난이도가 높다. 간단한 훈련을 며칠 반복하면 곧 회복된다.
후자의 경우, 체력은 남아 있다. 다만 그 체력을 꺼내 쓰는 구조가 잠시 흐트러졌을 뿐이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가벼운 훈련을 며칠 반복해보는 것이다. 흐름 정체라면 3~5일 안에 느낌이 돌아온다. 체력 저하라면 가벼운 훈련을 해도 회복되는 느낌이 없고, 더 긴 휴식이 필요하다.
이걸 체력 문제로 오해하면 불필요한 강도 조정으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체력을 더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강도를 올리면, 흐트러진 흐름 위에 더 큰 부담을 얹는 격이 된다.
결론: 체감이 나빠질 때는 되돌아가야 할 지점이 있다
훈련을 줄이지 않았는데 체력이 떨어진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당신의 체력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잘 쌓이던 지점에서 조금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 지점으로 돌아가면 체감은 다시 안정되고, 훈련은 다시 조용해진다.
철인3종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은 버티는 힘이 아니라 흐름이 끊겼을 때 되돌아올 수 있는 감각이다.
지금 훈련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앞으로 가기보다, 한 번 잘 쌓이던 자리로 돌아가 보는 것이 가장 빠른 해결일지도 모른다.
그 자리는 멀리 있지 않다. 보통 당신이 "이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다"고 느꼈던 지점, 훈련이 끝나고 "내일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지점이다.
그곳으로 돌아가서, 며칠만 머물러 보면 된다. 그러면 훈련은 다시 자연스러워지고, 체력은 다시 쌓이기 시작한다.
| 구분 | 실제 체력 저하 | 훈련 흐름 정체 |
|---|---|---|
| 기록 변화 | 최대 파워/페이스 자체가 하락함 | 기록은 나오지만 체감 고통이 배가됨 |
| 주요 신호 | 기상 시 심박 상승, 만성 무기력 | 워밍업 지연, 초반 진입 장벽 높음 |
| 심리 상태 | 운동에 대한 완전한 거부감 | 의욕은 있으나 몸의 반응이 늦음 |
| 처방전 | 완전 휴식 및 리빌딩 | 기준 훈련 반복 및 감각 복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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