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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에는 모든 것이 명확하다.
대회 일정이 있고, 목표 기록이 있고, 그 목표를 향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비교적 분명하다. 훈련이 힘들어도 “지금 이 시기는 이걸 해야 한다”는 이유가 있다. 문제는 시즌 중반이다. 대회까지는 아직 멀고, 그렇다고 완전히 여유로운 시기도 아니다. 초반의 긴장감은 사라졌고, 막바지의 절박함도 아직 오지 않았다. 목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일상 속에서 그 목표의 실감은 점점 흐려진다.
이 시기에 훈련은 갑자기 다른 성격을 띤다. 힘들어서 못 하는 훈련이 아니라, 왜 해야 하는지 선명하지 않은 훈련이 된다.

목표가 있어도 훈련이 흔들리는 시점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목표가 사라져서 훈련이 안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목표가 완전히 사라진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은 대회도 남아 있고, 기록에 대한 기대도 여전히 있다. 다만 그 목표가 오늘 훈련과 직접 연결되지 않을 뿐이다.
이 시기의 훈련은 이런 특징을 보인다.
- 오늘 훈련을 건너뛰어도 큰일이 날 것 같지 않다.
- 내일로 미뤄도 손해를 보는 느낌이 없다.
- 계획은 남아 있지만, 결정은 계속 유예된다.
이때 훈련이 유지되지 않는 이유는 의지가 약해져서도, 목표가 없어져서도 아니다. 훈련을 할지 말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시즌 초에는 기준이 단순하다. “이 훈련은 ○○대회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시즌 중반에는 이 문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대회가 너무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훈련을 멈추게 만드는 진짜 공백
이 시기에 가장 위험한 상태는 훈련을 쉬는 것이 아니다. 훈련을 할지 말지를 매번 고민하게 되는 상태다. 오늘 훈련을 할까 말까 고민하고, 내일도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훈련 하나하나가 결정 피로를 동반하게 되고, 결국 훈련은 점점 무거워진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고민이 훈련의 질을 높이지도, 계획을 정교하게 만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훈련을 조건부 행동으로 바꿔버린다.
- 시간이 남으면 한다.
- 컨디션이 좋으면 한다.
- 마음이 내키면 한다.
이 구조로 들어가면 훈련은 더 이상 흐름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이 된다. 그리고 선택의 연속은 장기 훈련에서 가장 빨리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방식이다.
시즌 중반, 내가 붙잡았던 단 하나의 기준
이 시기를 여러 번 겪으며 결국 하나의 기준만 남겼다. “이 훈련이 다음 훈련을 더 쉽게 만들어 주는가?” 이 기준은 목표 기록과도, 대회 일정과도 직접 연결되지 않는다. 대신 훈련을 훈련 자체의 흐름 안에서 판단하게 만든다.
오늘 훈련을 했을 때 내일 훈련이 더 수월해질까? 다음 주 훈련을 시작하기가 더 쉬워질까?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면, 그 훈련은 할 가치가 있다. 반대로 이 질문에 “잘 모르겠다”거나 “오히려 부담이 될 것 같다”면, 그 훈련은 지금 하지 않는 것이 맞다. 이 기준을 적용하자 훈련의 성격이 달라졌다. 훈련은 더 이상 목표를 향한 직선이 아니라, 다음 훈련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다.
기준이 바뀌면 훈련의 모습도 바뀐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몇 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 훈련 강도가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강도를 올릴지 말지를 “지금 체력이 되는가”로 판단하지 않게 된다. 대신 “이 강도가 다음 훈련을 방해하지 않는가”로 판단한다. 그 결과, 무리한 훈련이 줄어든다.
둘째, 훈련을 건너뛰는 날의 죄책감이 사라진다. 훈련을 쉬는 날에도 기준은 동일하다. “오늘 쉬는 것이 다음 훈련을 더 쉽게 만들어 주는가?” 그렇다면 쉬는 것도 훈련의 일부가 된다.
셋째, 계획이 느슨해지는 대신 단단해진다. 주간 계획은 덜 촘촘해지지만, 실제로 수행되는 훈련의 비율은 높아진다. 계획을 지키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기준이 자동으로 행동을 정리해 준다.
목표가 없는 게 아니라, 목표를 당장 쓰지 않을 뿐이다
이 기준의 장점은 목표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회를 포기하는 것도 아니고, 기록을 내려놓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목표를 직접적인 판단 기준으로 쓰지 않을 뿐이다. 목표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잠시 뒤로 물려나 있다.
시즌 중반의 훈련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시기가 아니라, 훈련을 지속 가능한 상태로 유지하는 시기다. 이 시기를 버티는 사람만이, 시즌 후반에 다시 목표를 전면에 세울 수 있다.
훈련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공통점
오래 훈련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이 시기에 공통적인 태도가 있다. “오늘 이 훈련이 대회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를 묻지 않는다. 대신 “이 훈련 덕분에 다음 훈련을 시작하기 쉬울까?”를 묻는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다. 전자는 항상 미래를 끌어당기려다 현재를 소모하고, 후자는 현재를 정리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시즌 중반의 권태기를 돌파하는 구체적인 실천법
훈련의 동기가 흐릿해질 때, 우리는 흔히 더 강력한 자극을 찾는다. 유명 선수의 동기부여 영상을 보거나, 새로운 장비를 구매하거나, 혹은 평소보다 훨씬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자신을 채찍질하려 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일시적인 처방일 뿐, 시즌 중반의 긴 호흡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반작용으로 인한 슬럼프를 불러오기 쉽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관성을 이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음 훈련을 더 쉽게 만드는 법"이라는 기준은 사실 뇌의 에너지를 아끼는 전략이기도 하다. 우리 뇌는 미지의 과업이나 너무 거대한 목표 앞에서 방어 기제를 작동시킨다. "3개월 뒤의 대회에서 개인 최고 기록을 경신한다"는 목표는 오늘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많다. 오히려 "오늘 가볍게 30분만 움직여두면 내일 아침에 몸이 덜 뻣뻣하겠지"라는 생각이 훨씬 더 강력한 실행력을 발휘한다.
훈련의 '연결성'에 집중하라
시즌 중반에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는 훈련을 개별적인 단위로 생각하는 것이다. 월요일 훈련, 화요일 훈련을 각각 독립된 과제로 인식하면, 컨디션이 조금만 떨어져도 '오늘은 건너뛰어도 괜찮겠지'라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하지만 모든 훈련이 다음 훈련의 예비 단계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수요일의 고강도 인터벌 훈련이 예정되어 있다면 화요일의 가벼운 조깅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요일에 근육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예열하는 과정'이 된다. 이렇게 훈련 사이의 연결 고리를 만들면, 하나를 건너뛰는 것이 전체 흐름을 끊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각하게 된다.
결정의 비용을 줄이는 법
우리가 훈련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몸이 힘들어서라기보다,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에너지를 다 써버리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오늘 비가 오는데 나갈까?", "어제 잠을 좀 못 잤는데 쉴까?", "퇴근이 늦었는데 내일 두 배로 할까?" 이런 수많은 질문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이때 "다음 훈련을 쉽게 만드는가"라는 기준은 복잡한 경우의 수를 단번에 정리해준다. "오늘 10분이라도 뛰는 것이 내일 운동을 시작하는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가?" 답변이 YES라면 고민 없이 운동복을 입으면 된다. 완벽한 훈련을 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흐름을 잇겠다는 목적 하나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이 시즌 중반의 권태를 돌파하는 가장 세련된 방식이다.
시즌 중반,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거창한 승리의 기억이 아니라, 내일의 나를 배려하는 오늘의 작은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들이 모여 결국 당신을 피니시 라인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결론: 시즌 중반을 버티는 기준은 단순해야 한다
목표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는 시즌 중반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동기부여가 아니다. 거창한 목표 재설정도 아니다. 훈련을 할지 말지를 판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준이면 충분하다. “이 훈련이 다음 훈련을 더 쉽게 만들어 주는가?”
그래서 시즌 중반의 훈련은 의욕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판단 기준 하나로 자동화해야 한다.
“이 훈련이 다음 훈련을 더 쉽게 만드는가?” 이 질문 하나만 남기면, 훈련은 다시 선택이 아니라 흐름이 된다.
이 질문에 답하면서 훈련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훈련은 다시 부담이 아니라 흐름이 된다. 목표는 잠시 뒤에 있어도 된다. 흐름만 유지된다면, 목표는 반드시 다시 앞으로 돌아온다. 시즌 중반은 버텨내는 시기가 아니라, 훈련을 계속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시기다. 그 구조를 지켜내는 기준 하나만 있다면, 훈련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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