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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훈련에서 ‘느낌’이 틀리지 않게 됐다

언제부터인가, 훈련에서 '느낌'이 틀리지 않게 됐다
철인3종 훈련을 시작했을 때 자주 들었던 조언은 이것이었다. "느낌을 믿지 말고 데이터를 보라"는 말이다. 심박수, 페이스, 시간, 거리. 수치는 분명하고 객관적이다. 반면 느낌은 주관적이고,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초반의 나는 훈련 중 느껴지는 감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훈련을 지속하면서 조금씩 이상한 순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록을 확인하기 전에 이미 그날의 컨디션을 짐작할 수 있었고, 훈련 강도를 낮춰야 할 날과 밀어도 될 날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훈련에서의 '느낌'이 데이터와 크게 어긋나지 않게 됐다. 이 글은 그 변화가 언제, 왜 나타나는지에 대한 정리다.
훈련 초반, '느낌'을 믿지 말아야 하는 이유
훈련 초기의 감각은 신뢰하기 어렵다. 체력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작은 피로도 과장되어 느껴지고, 반대로 무리한 상태에서도 괜찮다고 착각하기 쉽다. 이 시기의 느낌은 경험이 아니라 욕심과 불안이 섞인 반응에 가깝다.
그래서 초반에는 데이터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 심박수와 시간 같은 외부 기준은 과훈련과 부상을 막아주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이 단계에서 "느낌이 좋다"는 이유로 강도를 올리는 선택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다.
초보자가 범하기 쉬운 실수는 첫 몇 주간 급격한 의욕으로 훈련량을 늘리는 것이다. 몸이 가벼워진 것처럼 느껴지고, 페이스를 올려도 괜찮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하지만 이는 실제 체력 향상이 아니라 일시적인 흥분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감각에만 의존하면 부상과 번아웃의 위험이 커진다.
데이터만 믿어도 생기는 문제
하지만 데이터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심박수와 페이스는 그날의 수면 상태, 스트레스, 누적 피로를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숫자는 동일해도 몸의 반응은 다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는다. 데이터는 괜찮은데 몸은 무겁고, 반대로 기록은 평소보다 떨어지는데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날이 생긴다. 이때부터 데이터와 감각 사이의 간극이 문제로 떠오른다.
예를 들어 평소와 동일한 심박수로 러닝을 진행했는데 페이스가 현저히 느려지는 날이 있다. 이는 전날의 수면 부족, 업무 스트레스, 또는 누적된 피로 때문일 수 있다. 데이터는 "이상 없음"을 말하지만, 실제 몸은 회복이 필요한 상태다. 이럴 때 데이터만 고집하면 훈련의 질이 떨어지고, 장기적으로는 컨디션 저하로 이어진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심박수가 평소보다 높게 나오는데 몸은 가볍고, 페이스도 잘 나가는 날이다. 이는 환경 요인이나 측정 오류일 수 있다. 이런 날에 데이터만 보고 훈련을 중단하면 좋은 컨디션을 활용하지 못하는 손실이 발생한다.
감각이 틀리다가 맞아지기 시작하는 시점
감각이 신뢰 가능해지는 시점은 우연히 오지 않는다. 일정 기간 반복 훈련이 쌓이면서, 몸이 비슷한 자극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할 때 나타난다. 즉, 패턴이 만들어진 이후다.
이 단계에 들어서면 "오늘은 회복이 더 필요하다"거나 "이 정도는 유지해도 된다"는 판단이 실제 결과와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다음 날의 피로도, 회복 속도, 다음 훈련의 질이 예상 범위 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변화는 대체로 규칙적인 훈련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지속한 이후에 나타난다. 물론 개인차가 있고, 훈련 빈도와 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반복과 일관성이다.
뇌와 신경계는 반복되는 자극을 통해 학습한다. 같은 강도의 훈련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몸은 "이 정도 자극에는 이 정도 반응이 정상"이라는 기준을 내재화한다. 그 결과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고, 컨디션 판단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존2 러닝이 감각과 데이터를 연결하는 이유
이 변화의 중심에 있는 훈련이 바로 존2 러닝이다. 존2 강도는 심박 변동이 크지 않고, 같은 자극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반복할 수 있다. 이 반복성이 뇌와 신경계에 중요한 학습 환경을 만든다.
같은 심박, 비슷한 호흡, 유사한 리듬이 반복되면 뇌는 "이 상태가 정상"이라는 기준을 학습한다. 그 결과 작은 이탈에도 민감해지고, 컨디션 변화에 대한 감각이 정교해진다. 존2 러닝은 감각을 키우는 훈련이 아니라, 감각과 데이터를 일치시키는 훈련에 가깝다.
존2 강도에서는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호흡이 편안하다. 이 상태에서 장시간 달리면 몸의 미세한 신호들을 인식할 여유가 생긴다. 고강도 인터벌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근육의 긴장도, 호흡의 깊이, 발목의 피로감 같은 것들이 선명하게 감지된다.
또한 존2 러닝은 부상 위험이 낮고 회복이 빠르다. 그래서 일주일에 여러 번 반복할 수 있고, 이 반복을 통해 몸은 점점 더 정확한 자기 인식 능력을 갖추게 된다. 결국 존2 훈련의 가치는 단순히 유산소 능력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감각과 데이터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스스로를 읽는 능력을 발달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감각을 믿어도 되는 세 가지 조건
훈련에서의 느낌이 신뢰 가능한 판단으로 바뀌는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컨디션 예측이 맞기 시작할 때다. 훈련 전 예상한 몸 상태가 실제 훈련 후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은 페이스가 잘 나갈 것 같다"는 예감이 실제로 좋은 기록으로 이어지고, "오늘은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둘째, 회복 판단이 어긋나지 않을 때다. 쉬어야 한다고 느낀 날의 선택이 다음 훈련을 살린다. 무리하게 밀어붙였을 때와 적절히 조절했을 때의 차이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그 선택이 일주일 단위의 훈련 흐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셋째, 다음 훈련 결과가 예측 범위 안에 있을 때다. 기록의 변동이 이유 없이 요동치지 않는다. 오늘의 훈련 강도와 회복 상태를 고려했을 때, 다음 훈련의 질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고 그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감각은 더 이상 위험한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가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을 보완하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철인3종 훈련에서 이 능력이 중요한 이유
철인3종 훈련과 경기에서는 모든 상황을 수치로만 판단할 수 없다. 수영과 사이클 이후 시작되는 러닝에서는 누적 피로와 환경 변수가 크게 작용한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록 욕심이 아니라, 지금의 상태를 정확히 읽는 판단력이다.
컷오프를 넘길 수 있는지, 페이스를 유지할지 조절할지는 결국 순간적인 선택의 연속이다. 이 선택의 질을 높여주는 것이 바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감각이다.
경기 중에는 심박계를 볼 여유가 없을 때가 많다. 특히 트랜지션을 거치면서 변화하는 몸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남은 구간을 어떻게 배분할지 결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훈련을 통해 체득한 자기 인식 능력이다.
또한 장거리 경기에서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항상 발생한다. 더위, 바람, 코스의 기복, 보급 타이밍. 이 모든 것이 데이터에 즉각 반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몸의 감각은 이런 변화를 먼저 감지한다. 이때 자신의 감각을 신뢰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경기 완주와 기권을 가르기도 한다.
훈련 일지가 감각을 키우는 방법
감각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방법 중 하나는 훈련 일지를 꾸준히 기록하는 것이다. 단순히 거리와 시간만 적는 것이 아니라, 훈련 전의 예상, 훈련 중의 느낌, 훈련 후의 평가를 함께 적는다.
예를 들어 "오늘은 다리가 무거울 것 같다"고 예상했다면, 실제 훈련 후에 "예상대로 페이스가 나오지 않았다" 또는 "생각보다 괜찮았다"를 기록한다. 이런 기록이 쌓이면 자신의 예측 정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회복 시간, 수면의 질, 식사 패턴 같은 훈련 외적 요소도 함께 기록하면 컨디션과의 상관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전날 늦게 잔 날은 항상 심박수가 높게 나온다"거나 "탄수화물 섭취를 줄인 주는 회복이 느리다"는 패턴을 인식하게 된다.
이런 기록은 단순한 데이터 축적을 넘어서, 자기 관찰 능력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매일 자신의 상태를 언어화하고, 예측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감각의 정확도가 높아진다.
감각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훈련에서의 감각은 처음부터 믿어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반복과 누적을 거치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내부 지표가 된다. 데이터는 객관적이지만 불완전하고, 감각은 주관적이지만 맥락을 읽는다. 이 둘이 일치하기 시작하는 지점이 바로 훈련이 성숙해지는 순간이다.
존2 러닝을 중심으로 한 반복 훈련, 훈련 일지를 통한 자기 관찰, 그리고 충분한 시간. 이 세 가지가 모이면 감각은 저절로 발달한다. 그리고 그 감각이 신뢰할 만해졌을 때, 비로소 훈련은 숫자를 넘어 자신과의 대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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