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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3종 훈련을 하다 보면 이런 순간이 찾아온다.
훈련 강도를 크게 올린 것도 아니고, 기록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도 아닌데, 몸이 전보다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시점이다. 예전의 나는 이 감각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 정도로는 성장이라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훈련이 쌓이면서 나는 점점 분명해진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체력은 항상 기록보다 먼저, 감각으로 쌓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이 글은 철인3종 훈련 과정에서, 강도를 올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체력이 분명히 쌓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신호들, 그리고 그 신호를 어떻게 해석하게 되었는지를 정리한 기록이다.

기록이 그대로여도 훈련이 가벼워지는 순간
훈련이 잘 쌓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변하는 것은 기록이 아니다. 러닝 속도나 사이클 파워는 그대로인데, 같은 훈련을 대하는 부담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40분 러닝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오늘도 이 정도는 무난하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훈련을 시작하기 전의 심리적 저항이 줄어드는 것이다.
이 변화는 아주 미묘하다. 기록표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몸은 이미 같은 강도를 덜 에너지 소모적으로 처리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특히 러닝에서 이 변화는 페이스 설정 단계에서 나타난다. 예전에는 5:30/km로 달리려면 의식적으로 속도를 끌어올려야 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그 속도가 나오기 시작한다.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몸이 알아서 그 리듬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이 시기의 훈련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체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같은 강도를 더 효율적으로, 더 안정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이 자리 잡고 있는 중이다.
워밍업이 '준비'가 아니라 '연결'이 되는 시점
체력이 쌓이기 전의 워밍업은 말 그대로 준비 단계였다. 몸을 깨우고, 뻣뻣함을 풀고, 본훈련으로 넘어가기 위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체력이 쌓이기 시작하면 워밍업의 성격이 달라진다. 워밍업이 끝났을 때 "이제 시작해야지"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느낌"이 든다.
러닝에서 이 변화는 특히 분명하다. 워밍업 5분이 지나자마자 보폭과 호흡이 자연스럽게 맞아들고, 굳이 속도를 올리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리듬을 찾아간다. 이때는 워밍업이 훈련의 앞부분이 아니라, 훈련의 일부처럼 연결된다.
사이클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난다. 예전에는 10분 정도 가볍게 돌려야 다리가 풀렸다면, 체력이 쌓인 이후에는 3~4분만 지나도 페달링이 부드럽게 이어지기 시작한다. 몸이 운동 상태로 전환되는 시간이 짧아진 것이다.
이 감각이 반복해서 나타난다면, 강도를 올리지 않아도 체력은 이미 한 단계 위에 올라와 있다.
훈련 중 '버티는 구간'이 사라지다
예전에는 훈련 중 항상 버텨야 하는 구간이 있었다. 러닝 중반, 사이클 후반, 혹은 수영에서 숨이 가빠지는 특정 시점. 이 구간을 넘기기 위해 의식적으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하지만 체력이 쌓이기 시작하면, 이 버티는 구간의 경계가 흐려진다. 힘들긴 하지만, "여기만 넘기면 된다"는 느낌이 아니라, 훈련 전체가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진다.
이때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호흡이 흔들려도 금방 다시 안정된다
- 페이스를 의식적으로 붙잡지 않아도 유지된다
- 훈련 중 생각이 흩어지지 않는다
이는 체력이 단순히 늘어난 것이 아니라, 훈련 강도를 처리하는 효율이 올라갔다는 신호다.
실제로 같은 심박수로 달리더라도 체감 강도는 분명히 낮아진다. 이전에는 심박 150bpm에서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면, 지금은 같은 심박에서도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다. 이것이 바로 체력이 쌓이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 중 하나다.
다음 날 훈련의 '출발선'이 앞으로 당겨진 느낌
체력이 쌓이고 있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신호는 다음 날 훈련의 시작 감각이다.
훈련이 아직 체력으로 흡수되지 않았을 때는, 전날 훈련의 여파가 다음 날 시작 구간에 그대로 남는다. 워밍업이 길어지고, 몸이 풀리는 데 시간이 걸린다.
반대로 체력이 쌓이기 시작하면, 다음 날 훈련의 출발선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당겨진다. 어제와 같은 강도인데도 더 빠르게 본훈련 구간으로 진입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점은, 피로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다. 피로는 있지만, 그것이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 상태. 이 상태가 반복된다면, 체력은 이미 누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월요일에 강도 높은 인터벌 훈련을 했다면, 예전에는 화요일에 가벼운 조깅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체력이 쌓인 이후에는 화요일에도 일정 수준의 훈련을 무난히 소화할 수 있게 된다. 회복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이는 단순히 근육이 강해진 것이 아니라, 심폐 능력, 에너지 대사, 신경계 적응이 모두 향상되었다는 의미다.
강도를 올리고 싶지 않게 느껴지는 날들
아이러니하게도 체력이 쌓일수록, 강도를 당장 올리고 싶은 욕구는 줄어든다. 몸이 안정되니 조급함이 사라지고, 굳이 무리해서 확인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제 좀 올려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면, 이 시기에는 **"이 흐름을 조금 더 유지해보자"**는 생각이 앞선다.
이 심리적 변화는 매우 중요한 신호다. 훈련이 불안정할 때는 확인 욕구가 커지고, 훈련이 안정될수록 기다릴 수 있게 된다.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체력이 버텨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시기에 강도를 성급하게 올렸다가 리듬이 무너진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반대로 이 안정감을 2~3주 정도 유지한 뒤 강도를 올렸을 때는, 거의 무리 없이 새로운 강도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체력이 충분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강도를 올리는 것은 건물에 기초공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층을 올리는 것과 같다. 겉으로는 빠르게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체력이 쌓일 때 나타나는 일상의 변화
훈련 기록 외에도, 일상에서 작은 변화들이 나타난다.
- 계단을 오를 때 숨이 덜 차다
- 하루 활동 후 저녁에 에너지가 남아 있다
- 수면이 깊어지고, 중간 각성이 줄어든다
이 변화들은 훈련 성과로 잘 언급되지 않지만, 체력이 실생활로 전이되고 있다는 명확한 신호다. 특히 철인3종처럼 장시간 유산소 능력이 중요한 종목에서는, 이런 변화가 기록 향상의 토대가 된다.
나의 경우, 체력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변화는 오후 3~4시의 에너지 레벨이었다. 예전에는 이 시간대에 피곤함이 몰려왔는데, 지금은 오히려 가장 집중력이 좋은 시간대가 되었다.
또한 아침 기상 시의 몸 상태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일어났을 때 몸이 무겁고 관절이 뻣뻣했다면, 지금은 일어나자마자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로 깨어난다.
이런 변화들은 단순히 잠을 잘 잤다는 것을 넘어서, 몸의 회복 능력 자체가 향상되었음을 보여준다.
강도를 올리지 않아도 성장하는 구간의 의미
이 시기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기 쉬운 구간이다. 눈에 띄는 기록 향상이 없고, 훈련 강도도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장 안전하고, 가장 효율적으로 체력이 쌓이는 시기다.
이 구간을 충분히 거치지 않고 강도를 올리면, 성장은 빠를 수 있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반대로 이 구간을 충분히 통과하면, 이후 강도를 올렸을 때 흔들림이 훨씬 적다. 지금의 나는 이 시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강도를 올리기 전에, 몸이 먼저 여유를 만들어주는 단계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급하게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훈련 일지를 보면서 "왜 기록이 안 좋아지지?"라고 초조해하기보다는, "몸이 어떻게 느껴지는가"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 시기를 3~4주 정도 유지한 뒤 강도를 올렸을 때,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새로운 레벨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기초가 단단하게 다져진 상태에서 올라간 강도는, 다시 내려올 가능성이 적다.
마무리: 체력은 조용히 쌓인다
철인3종 훈련에서 체력은 늘 요란하게 늘지 않는다. 대부분은 기록이 아니라 감각으로, 하루가 아니라 흐름으로 나타난다.
강도를 올리지 않았는데도 훈련이 가벼워지고, 다음 날 시작이 부드러워지고, 일상이 편해진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다. 체력은 이미 쌓이고 있다.
이 시기를 알아차리고 지켜낼 수 있다면, 이후의 훈련은 훨씬 단단해진다. 이 구간을 건너뛰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빠른 길이었다. 지금의 훈련이 조용하다면, 어쩌면 가장 잘 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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